오늘날 점점 더 차갑고 연민이 사라지는 사회를 보며 우리는 깊이 슬퍼하고 두려워한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고통 앞에서 그저 받아들이고, 이런 현실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열정이 사라졌고, 정당한 분노가 사라졌고, 변화를 위한 에너지가 사라졌다.
영국 시인 Studdert Kennedy는 「When Jesus Came to Birmingham」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께서 버밍엄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다.
그들은 그분의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분이 죽게 내버려 두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십자가를 따르기 위해 고통받는 이웃들, 세상에서 상처받고 억눌린 이들에게서 상처 입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도록 분명히 부름받았다. 고통을 설명하기만 하는 신앙, 사람들이 고통을 나누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신앙, 고통이라는 무섭고도 무거운 현실을 극복하는 데 힘이 되지 않는 피상적인 신앙에 빠져들지 않도록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영감을 주며, 그들을 위로하고 변화시킨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 자비는 가장 멸시받는 이들의 고통을 하나님의 고통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적극적인 연대와 행동을 요구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가치를 무시하는 이 시대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세상을 전복시키는 행위이다.
마태복음 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