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시리즈 ➊ 위험한 기억에의 초대 / 이용훈 |
|
|
안녕하세요. 진원 여러분! 👨진장입니다.
글로 인사드리게 되어 새롭습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 성경과 책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고난주간을 함께 보내는 여러분께 묵상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
|
기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기억'이라고 하면 이미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의 의미를 조금 더 분명히 정의하고 확장시킨다면, 과거의 완결된 사건을 되돌아보는 행위인 동시에 인간이 가지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행위다.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기억의 의미는 훨씬 더 깊고 역동적이다. |
|
|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가장 핵심적인 기억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직접 경험한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 기억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졌고, 우리는 그 공유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는 문자 그대로 예수를 기억한다. 매일, 매주, 말씀을 듣고, 심지어 성찬에 참여하며 또 다른 여러 방식으로 예수를 기억한다. 이 기억은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이다. 예수에 대한 기억 없이는 용서도, 과거 상처의 치유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을 기억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상처도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이며, 우리의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십자가의 기억은 당시 종교적, 정치적 권력에 도전했던 예수의 삶과 죽음을 상기시키며 오늘날에도 기득권과 지배 구조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한편, 이를 진정으로 간직한다는 것은 자기희생, 타인을 위한 헌신, 박해를 감수하는 삶으로 부르심을 의미하기에, 안전과 풍요, 자기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위험한 기억이다. 따라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산다는 것은 예수의 수난이라는 ‘위험한 기억’에 기초한 공동체로서 사는 것이다.
|
|
|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성찬이라는 방식으로 기억한다.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이 행위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다. 따라서 성찬은 기이한 기억에 뿌리를 둔 사건이다.
우리에게 성찬은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아니며, 그 시간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다시 경험하고, 골고다와 그의 희생을 현재화하며, 예수의 부서진 몸인 동시에 영광스러운 몸과 연대함으로써 그의 상처받은 몸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며, 빵을 떼고 나눌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찬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부서지고 쪼개신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모으는 행위다.
|
|
|
1세기 팔레스타인의 사람들은 골고다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아로 여기는 그리스도론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십자가 사건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상의 통념으로는 그의 생애를 이해할 수 없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과의 연대, 부유하고 독실한 이들과의 논쟁, 그리고 반역자이자 범죄자로서 죽음을 맞이한 일까지 예수의 삶은 모두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의 삶은 세상 이치에 맞지 않다. 그리스도는 어리석은 사람, 모순의 상징이다. 그분의 길을 따르는 이들은 그분의 어리석음을 나누는 이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를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되라는 부름을 받는다. 십자가의 말씀은 어리석은 모습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의향과 분리해 이해할 수 없다.
이 역설을 가리키는 징표가 되기를 멈추고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은 비참하게 몰락한다. 세상에 순응하는 것은 어리석음, 역설, 모순의 길을 걷는 공동체, 이 세상과 대비를 이루고 이 세상 질서에 반대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정반대의 지점에 서는 것이다. 십자가에 기원을 둔 우리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려면 세상의 규범,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
|
|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우리는 예수를 기억하는 공동체다. 십자가의 기억을 중심으로 우리의 존재는 빚어지고, 그 기억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
고전 1:18에는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의 상징이며, 우리는 그 어리석음에 부름받은 자들이다. 쉽지 않은 세속의 가치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리석음을 오늘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우리 진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
|
|